≪ 의병 ≫
의병으로 나라를 구하다. 김인심
조식: 학문하는 선비는 뜻하는 바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가르쳤으며
그 제자들이 스승을 따랐다.
조식의 제자 곽재우: 붉은 옷을 입고 싸워 ‘홍의장군’이라 불림
경상도를 통해 전라도로 들어가 이순신의 뒤쪽을 치려는 일본군의 계획방해.
의병들이 곳곳에서 길을 막고 저항→일본군은 계획수정→전주 쪽 으로 돌아가
전라도를 차지하려고함→전주이치고개→광주목사 권율이 병사 1천으로 막음→
의병 1만 여명 가세→한양에 가서 도성을 찾으려고 한강하구의 행주산성에 진을 침.
당시 명의 구원병 5만→평양성을 되찾고 한양으로 올라감
권율: “명나라 군대와 힘을 합쳐 한양을 되찾겠다” 고 생각했다.
명군이 벽제관에서 크게 패해→평양으로 돌아가 버림. 게다가 자신들이 명령 내릴 때까지
꼼짝 말라고 거만하게 굼→계속 전쟁을 미루자 조정 대신들의 재촉에 준비가 안됐다는 핑계
만 댐.
한편 일본군은 조선군이 행주산성에 진을 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명군이 행주산성의 조선군과 합치면 힘든 싸움이 되므로 명군이 오기 전에 행주산성을 치기로 함. 3만 명의 병력으로 올라온 왜군은 전 국민이 도우는 전투에 패했고 또 지원병이 올라온다는 소리에 후퇴 시작.
행주산성에서 패한 일본군-남쪽으로 후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군과의 협상(1593년4월) 몇 년 동안 계속되는 협상-일본군, 명군의 약탈. 횡포에 국민의 고통은 심화되고 이러는 도중 조선의 혼란스러운 사건 하나가 발생한다. 일본이 다시 조선을 침략해 올 거라는 소식-당파 의견 나눠짐-이순신은 어명 거절-하옥됨. 1597년 다시 일본의 조선 침공-정유재란(전라도 집중 공격). 이순신의 백의종군-원균의 빈번한 패함-칠전량 해전 전사-선조 이순신에게 삼도수군통제사.
남해 → 울돌목(명량)수백척에타격 → 갑작스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 → 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군 철수 시작 → 명제독 진린과 이순신의 공격 → 노량 앞바다 크게 대패. (이순신 전사)
<임진왜란의 피해>
1. 초토화된 농지
2. 국가재정을 위해 돈을 받고 벼슬을 팔거나 사들임
군대 의무 없애 주기도 하고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게도 하고 (양민이 많이 죽기 때문)
→ 유교 사회의 신분질서가 서서히 무너짐.
3. 문화재 손실 - 건축물 소실
서적, 미술품 수만점 약탈 당함 그리고 불에 탐
사고 - 실록 및 중요서적 보관 하는 곳 소실(전주사고만 제외)
도공, 인쇄공의 기술자들이 일본으로 끌려감
이삼평(일본 도자기의 조상), 사쓰마 도자기(세계적으로 유명, 심당길)
4. 1592. 4. 14. 20만대군의 일본 침략 -
한달이 못되어 한양함락(경복궁 화재:노비문서가 있던 장예원 소실)
두달 뒤 평양함락
5. 군사모집 위해 임해군, 순화군 함경도로 파견, 지원자가 없었음 →일본군의 포로가 됨
6. 의병 봉기 : 자발적으로 자기고장을 지키려고 일어선 병사들
양반, 농민, 노비 → 의병부대 조직→의병장(양반)
7. 이이의 제자 조헌 - 충청도 옥천에서 의병 봉기
금산에서 700여명의 부하들과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
8. 김천일(진주성) -화살과 창이 떨어져 아들과 남강에 떨어져 죽음.
9. 승려 - 서산대사, 사명당, 김영규 승려 봉기
10. 고경명 (1533-1592) - 1558년 문과 급제
전라도 담양에서 의병 봉기
전라좌도 의병 대장 추대→전주장악 →경상도 지나 전라도로 진 격하던 왜군 방어
충정도에서 의병 일으킨 조헌과 합세→ 금산에 머물던 왜적 공격→무리한 공격으로 군대를 잃고 후퇴하다 밀려드는 적군과의 전투중에 사망
11. 김천일 : 의병 일으킬 것을 제의, 진주성에 패하여 아들과 촉석루에서 자결
12. 조헌 : 옥천에서 의병 1600여명 모아 영규대사가 이끄는 승병과 청주성 수복
그러나 충청 순찰사 윤국형의 방해로 의병강제해산
700여명 이끌고 군산으로 감
영규승병과 최후의 한사람까지 싸우다 전사(금산전투)
“칠백의 총”이 금산에 세워짐.
≪ 인조반정≫
김인심
∘ 광해군 : 인목대비 서궁에 유폐 , 능양군(이귀, 김자점, 김류, 최명길, 이괄 등)은 서인과 함께 1623년 대궐 침공→훈련도감 이확(상황이 불리해지자 대궐 통과하도록 허락)→반정군은 인조반정의 명분을 형이 아우를 죽였고, 어머니를 내쫓고,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에 사대정책을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광해군을 폐위 시키고 결국 제주도로 유배를 시킴→능양군을 왕위에 등극시킴으로 16대 인조가 됨.
▸인조반정 과정
1. 군사동원자 : 이귀(평산부사), 김류(강계부사), 이괄(평안부사겸 부원수)
2. 반정 1년전(1622) 이귀는 평산부사로 재임중에 범사냥 빌미로 군사를 무장시켜 도성으로가려 했으나 이 모의는 사전에 누설되어 연기됨.
3. 상황의 급변으로 능양군과 역모세력이 1623년 3월 13일 새벽 거사를 도모한다.
12일밤 홍제원에 모여 군사행동지침을 마련하던 중 조정에서 거사 계획을 눈치채고 훈련도감 이확에게 역모가담자 검거명령을 하달한다. 이귀가 듣고 난후 거사 시간을 앞당겨 출병하게 된다.
4. 출병당시 반란군 1400여명군 중 반란군 대장 김류의 늑장으로 절반도 안 되는 반란군은 이괄에게 대장직을 권유하고 “義'자 머리띠를 두르도록 하고 군사를 지휘
5. 김류는 거사계획 탄로 소식을 듣고 뒤늦게 반란군에 합류를 하고 이괄이 김류가 지휘자가 되는 것을 반대 하자 이귀가 중재하여 총지휘를 맡게 된다.(이괄의 난의 원인을 제공)
6. 반란군은 창의문을 진격→창덕궁→창의문에서 능양군 자신의 수하가 기다리고 있었음
→이를 목격한 이확은 불리한 자신의 상황을 깨닫고 반란군을 공격하지 않는다.
7. 훈련대장 이홍립은 대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음 → 반란군 내응 약속했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반란군 진입을 돕게 됨→반란군은 인정전통과→창덕궁 금호문까지 이름
8. 금호문(수문장 박효림 내응)→돈화문에 불을 내고 승리를 확인함
9. 광해군은 반란군 대궐 점거 인지 하고 대궐을 빠져 나옴
10. 능양군은 서궁으로 가서 인목대비를 왕위 교서를 받게 됨